Hibi & Kohaku

日々&古白

Jeju|South Korea

골동품점을 닮은 히비 안도 코하쿠(日々&古白)에서는 두 가지 요리가 준비된다. 연근과 가지, 당근, 닭고기 튀김을 소스에 버무려 나가는 ‘히비정식’과 함박스테이크에 진한 소스를 뿌려 나가는 ‘함박정식’이 미소장국, 샐러드와 함께 메뉴를 구성한다. 서울에서 가장 혼잡한 동네 중 하나인 홍대에서 9년 동안 문을 열었던 카페 히비가 제주도의 조용한 마을로 이사를 했다. 히비 안도 코하쿠라는 이름으로 바뀐 이곳에서 먹는 요리에는 제주 생활의 여유도 함께 담겨있다.

히비 안도 코하쿠(日々&古白)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에 나올법한 장소가 떠오르는 곳이다. 어두운 나무색은 공간을 차분하게 정리해주고, 그 안에 걸려있는 미색이 빛의 균형을 잡아준다. 단출한 테이블 수와 여백이 남는 공간은 그만큼 음식을 먹으러 온 이에게 마음의 여유도 함께 내어 준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식당에서 볼 수 있는 – ‘신메뉴 개시’ 같은 – 벽을 빼곡하게 채운 글자 대신 우리는 나무의 결, 색바랜 천, 유리에 반사된 램프의 빛처럼 조금씩 낡아가는 재료에 둘러싸여 – 세상과는 동떨어진 이곳에서 – 맛있는 요리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01. 어떻게 처음 요리를 시작하고 식당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식사가 맛있는 카페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고 카페에서의 식사 메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9년간 홍대에서 카레가 맛있는 ‘카페 히비’ 라는 가게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제주에서 2종류의 식사를 제공하는 히비 안도 코하쿠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02. 홍대에서 히비를 운영하시다 제주도로 이사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가 바뀌었을 것 같은데 요리하는 방식이나 준비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홍대에서 히비를 시작한 것이 2008년 12월이었습니다. 처음에는 3개월 일하고 한 달은 여행하자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로망이 있었네 싶기도 하고 순진하고도 무모하게 시작했구나 싶어요. 어려운 시기가 몇 번 있었고 가게 상황에 맞춰 운영하다 보니 정작 카페는 365일 중에 360일을 영업하는 가게가 되었더라고요. 그때부터 쉬는 날 없이, 아니 쉴 수 있는 날 없이 홍대에서 장사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생활이 계속 이어지면 안 되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곳을 찾아서 가게 이전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제주로의 이주는 3년 전부터 준비했는데 서울에서 제주로 일과 생활 모두를 옮긴다는 것이 생각처럼 척척 진행되지 않았어요.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다 보니 3년이 훌쩍 흐른 작년 가을에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주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전부터 저희 부부가 바라던 제주도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어서 현재 생활은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 위주의 삶을 살고 있어요. 쭉 지내왔던 서울과 비교하면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단조롭기도 하지만 아이를 중심으로 지내다 보니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가요. 식당 영업시간도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하고 있어요. 오전 11시 30분부터 3시까지 하고 있고요. 식사 준비까지 포함해 오전 10시에 일을 시작해서 4시 30분에 가게 영업을 마치고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첫째와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먹고, 씻기고, 재우고 – 그리고 밤에 다시 가게로 나가 다음날의 식사 준비를 하는, 단조롭지만 바쁜 하루를 매일 보내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7~8시간 정도 일을 하고 있는데 즐겁게 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불편한 점은 장 보는 일이에요. 서울보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배달이 안 된다는 불편함이 있어서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할 때 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가게는 주 5일로 운영하고 있고 영업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7~8시간 되는 것 같아요. 쉬는 날에도 8시간 정도 밑준비를 해놓아야 5일 동안의 식사 준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서울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훨씬 만족스러운 근무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는 쉬는 날 없이 매일 숨 막히게 일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예전처럼 함께 일하는 스텝들도 없이 혼자 일하고 수입도 적어졌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가고 자기 전 함께 목욕하고 일요일엔 가족과 어울려 휴식을 즐기는 지금의 생활에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홍대에서 일할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에요. 제주로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03. 히비 안도 코하쿠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나요. 어떤 공간과 요리를 만들고 싶었나요.
지금과 과거, 그런 뜻으로 日々 & 古白 를 만들었어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했었고 자연스럽게 당시 일본의 문화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시간이 나면 골목이 많은 동네의 작은 LP 음반 가게를 간다거나 카페나 인테리어 가게를 간다거나 서점에 가서 책들을 보는 게 너무 좋았던 시기였어요. 책 또는 잡지에 나오는 곳을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다녔던 것이 지금의 취향을 이루게 된 것 같아요. 천천히 조금씩 자연스럽게!

우연히 펼쳤던 많은 책에서 접한 히비(日々)라는 말에 울림이 느껴졌어요. 히비는 일본어 발음이고요. 한자 표기로는 날일자가 (日日) 두 개 붙은 말입니다. 해석하자면 ‘나날’ 이란 뜻이에요. 2008년 홍대에서 창이 많은 2층 공간에 까페 히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따뜻함과 오래되어 색 바랜 책의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가게의 컨셉이었어요. 2층 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과 자극적이지 않은 햇살,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은 곳.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좋은 음악이 함께하는, 음식이 맛있는 가게가 되길 바랐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의 가게까지도 이런 분위기를 이어오고 있어요.

고백은 일본어로 코하쿠(古白)라고 해요. 오래되어 빛바랜 것들이라는 뜻으로 고백이란 단어를 생각해봤어요. ‘고백하다.’ –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라는 뜻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히비(日々)가 하루하루 이어지는 매일이라고 한다면 고백(古白코하쿠)은 지나온 시간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의 ‘카페 히비’ 가 지금의 식당이 되었고 이 공간을 처음 봤을 때 원래의 계획보다 조금 큰 규모였기 때문에 소품점을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코하쿠란 이름을 하나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내와 함께 고른 소품들이 누군가의 눈에 들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오랜 시간 내내 그들의 손에서 빛바래도록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품점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요.

식사는 현재 2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요. 함박스테이크에 진한 소스를 듬뿍 뿌려 계란후라이를 올려 나가는 ‘함박정식’ 과 야채와 닭고기를 튀겨 소스에 버무려 나가는 ‘히비정식’ 이 있어요. 두 메뉴 모두 밥이 제공되고요. 구성에 따라 샐러드와 미소 장국을 곁들일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요. 한상 차림이라 혼자 오셔서 드시는 분들도 많아요. 두 메뉴 모두 맛있지만 닭고기를 튀긴 ‘히비정식’ 을 특히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꼭 만들어드리고 싶네요.

음료는 식사와 함께 드실 수 있는 소다로 2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요. 깔끔한 맛의 ‘매실소다’ 와 청량한 맛의 ‘유자소다’ 가 있어요. 카페를 운영할 때처럼 다양한 음료를 준비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지만 지금은 식사 메뉴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해요. 아내와 저 둘이서 운영하다 보니 시간과 일손이 부족한 이유도 있고요. 홍대 ‘까페 히비’ 에서 많이들 좋아해 주셨던 ‘말차라떼’ 와 ‘밀크티’ 는 보틀 음료로 따로 준비해서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식사 끝내고 가시는 길에 많이들 사 가세요. 그 맛이 너무 생각나서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가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 어디보다 진한 맛의 말차라떼와 밀크티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04. 요리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음식의 맛을 일정하게 꾸준히 제공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원하고 손님들이 만족하실 수 있는 퀄리티의 맛을 제공하고 그 맛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이것이 식당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유지하는데 겉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노력을 쏟고 있어요. 지금은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기에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2가지의 메뉴를 준비하고 있지만, 좋은 퀄리티의 식사를 꾸준히 제공하는 데 있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려하며 새로운 메뉴를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는 아내가 육아를 하고 있어서 일을 도와주는 것만 해도 벅찬 현실이에요. 조금 더 가게가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스텝을 늘리고 가게의 메뉴들도 더 완성도 높게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공간과 준비하는 식사를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 누구와 찾아오더라도 역시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드는 가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가서 먹어보라고 추천한 모든 친구들이 칭찬받길 바라며!

05.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자주 사용하게 되는 식자재가 있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닭고기를 좋아했어요.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이기도 하고 식감이 부드러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기도 하고요. 열을 가했을 때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비해 기름기가 적어서 다른 식재료나 소스와 다채롭게 어울리는 장점이 있어서 좋아하고 자주 요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06. 음식에 관한 즐거운 기억, 혹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보았던 엄마의 모습은 늘 식사 준비를 하시는 뒷모습이었어요. 미식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잘 먹는 아이들 셋이 있는 집의 모든 먹거리를 책임지고 살아오셨어요. 계절마다 그에 맞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상에 올라왔고 급식이 없던 시절에 아이들 셋의 도시락을 새벽마다 싸주셨구요. 특히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그것만 싸달라고 조르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배고프다고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면 끓여주셨던 라면, 고단한 시험이 끝나고 실컷 먹으라며 구워주셨던 삼겹살, 늘 숯불에 구워주셨던 바삭하고 고소한 김, 갓 조린 포슬포슬한 감자 조림, 재료마다 따로 볶아 더 특별하게 맛있는 잡채 등 어머니께서 해주신 모든 음식들이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원천이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예전에 엄마가 해주셨던 반찬과 찌개, 가족들을 위해 차려주신 모든 끼니들에 대해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전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요. 둘 다 잘 먹는 편이어서 세 가지 이상의 메뉴를 소화하곤 했어요. 훗날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음식점에 다 같이 가서 둘이서 먹을 때보다 훨씬 많은 메뉴를 이것저것 주문해 함께 나눠 먹는 날을 꿈꿔봅니다.

07. 제주에서 좋아하는 동네나 장소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중에 4년 정도는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일부러 제주도에 왔었어요.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갔던 곳이 금능에 있던 ‘그곶’이라는 카페였어요. 대화 없이 가만히 앉아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가게의 분위기와 꼭 닮은 주인분들이 계시는 좋아하는 공간이었어요. 지금은 원래의 장소에서 영업을 종료하고 다른 곳에서 다시 카페를 준비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어서 ‘카페 그곶’ 이 새롭게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능은 방금 소개한 카페 말고도 바다가 잔잔하고 노을이 참 예쁜 곳이라 가끔 바다가 보고 싶을 땐 멀어도 일부러 찾아가게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제주로의 이주를 생각하게 된 작은 행복이 금능에서 생겨난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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