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e Lautrou는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현대미술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자연주의 도예가인 그녀의 스승 Dauphine Scalbert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의 제자로 남아 도예를 배우기 시작한다. 소탈하게 남아 있는 유약의 흔적이나 겹겹이 층을 이루는 흙이 만들어낸 무늬가 예전에 그녀가 그렸던 페인팅 작업을 떠올린다. 작은 공원을 마주하는 그녀의 작업실에는 형태도 색도 다른 거친 질감의 그릇들이 투박한 나무 장에 놓여 있다.
“스승님의 집에 도착했을 때 차를 한 잔 내어 주셨습니다. 흙으로 구어져 유약이 발라진, 단순하지만 다른데서는 찾을 수 없는 잔이였죠. 좋은 잔으로 차를 마시는 건 굉장히 단순한 즐거움이잖아요. 그런데 감촉이나 균형감, 그런 세세한 요소들이 좋아서 항상 그 잔에만 손이 가게되요. 그 느낌 때문에 유리로 만든 잔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어요.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그만뒀어요. 시골 자택에서 수십년 간 세라믹을 굽고 있는 자연주의 도예가 Dauphine Scalbert을 만나면서 세라믹에 매료되었습니다. 사실 현대 미술을 했었기 때문에 현대 세라믹을 하게 될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의외로 일상에서 사용되는 그릇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자기를 굽는 것은 현대미술과는 달리 단순한 작업이에요. 동시에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릇을 돌리고 있으면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에 반응해서 그릇 전체의 모양이 바뀌어 버려요. 조금이라도 형태가 일그러지면 눈으로 볼때의 즐거움을 잃어요. 좋은 균형을 찾으면 보기에도 좋고 사용하기에도 편하죠. 아주 작은 움직임도 형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집중해야하는, 그 빠져드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릇을 만들 때는 매체가 흙이기 때문에… 흙은 결코 흉할수가 없거든요. 재료 자체가 너무 좋아요. 투박한 그릇에 담긴 아침식사를 하는 즐거움을 누구나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 그림을 그릴 때 어른들한테 그림을 가르친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어요. 제 아틀리에서 누군가가 못 그린 그림을 그리는걸 보는것이 굉장히 끔찍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도예를 할 때는 아무리 망친 그릇이라도 흙이기 때문에 흉하지가 않아요.
세라믹은 구워지기 전까지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거든요.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릇은 얼마 되지 않아요.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가 모여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워요. 형태도 좋아야 되고 유약도 잘 나와야하고, 잘 구워져야하고. 이미 만들었던 아름다운 자기를 그대로 다시 만드는건 사실 힘들어요. 거기다가 저는 만들고 싶은 형태를 정확하게 정해놓고 작업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흙을 모두 섞기 때문에 같은 그릇은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모습이 조금씩 달라요. 어떤 도예가들은 똑같은 그릇을 반복적으로 구워내는데 그런 경우에는 결과에 대한 어떤 놀라움도 없어요. 정말 세세한 것까지 정해서 그릇을 굽는 작가들과 비교하면 제가 하는 작업은 완전 그 반대에요.”